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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중국인 손수우영과 최재형장로님의 흔적

윤봉옥 행정학 박사/국립목포대학교 창업지원단 유) 동천환경연구소장

작성일 : 2021-01-19 16:24

 

손수우영은 당시 31세 중국인이다.

활빈고등학교 5학년 200명중 상위 3위권안에 든 우수한 학생이였다. 그녀는 한국 대학생이 중국활빈시 연수 고.중학교에 순수시영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 서로 사귀게 되어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를 낳아 한국으로 왔다.

 

그녀의 삶은 시가댁에서 고통을 겪게되어 어린아이와 함께 가출을 해서 거리를 헤매면서 방황을 하고 있는 모습을 평소 제가 잘 알고 있는 여성 지인이 발견 필자에게 전화가 왔다. “다문화가족후원회장, 이시지요, ”, “그렇습니다. ” 보내십시오, 오후쯤 필자의 연구소에 왔다. 어린아이는 등에 업혀 배 곪아서 울고 있었다. 그동안의 한()맺힌 한국에서의 삶을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났다.

 

1년간 소식이 없어 가출신고를 했지만 알 수없었다. 오후 해가 뉘엿 뉘었 서산으로 넘어가는데 갈곳이 없다는 것이다. 깊은 생각 끝에 평소 가까이 했던 분 곽상순사장. 송양필소장. 김청용사장에게 연락을 해서 연구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협의내용중 우선 방을 하나를 사글세로 얻어주기로 해서 방을 구해주었다...주를 해결할 수 있었고 겨울이 돌아오는 날에 연탄도 준비해 주었다. 아이는 배곪을 달래면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참으로 강하고 진실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각오였다. 거리에서 빵집도 운영을 했고, 작은 가계를 빌려 중국음식도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뇌()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충돌이 심해 합의 이혼을 하고 아들과 함께 집을 나왔다. 그녀는 삶을포기하지 않았다. 중국으로 돌아갈 수없었다. 아들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노동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S 초등학교 5학년이란다.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혼자서 밥을 하고 라면을 끊여서 혼자서 끼니를 떼운다는 것이다. 경찰서 인접 집에서 하당 S 초등학교를 시내뻐스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는 것이다. 손수우영이는 오직 아들과 함께 한국인으로서 삶을 다 하겠다는 각오였다.

 

지난 20201221일이다 전화가왔다. - “오래만이다, 어떻게 살지-회장님 한번 만나고 싶어요, 그래,“ 연구실로 오라- 아니면 찻집에서 차나 한잔 하지요,-그래라. 그렇게 합시다. 우리는 작은 커피집에서 약 3년만에 만났다.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였다. 안정된 듯 싶었다. 현재 시청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보살핌에 감사를 드린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당시 도움을 주었던 분들 안부를 물었다.그리고 운전을 배워서 작은 차를 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익숙한 삶을 보내고 있어 그녀에게는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있었다.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집에 있는 동안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돌아와 밥을 짓겠다는 말에-, 나둬. 엄마가가 가서 밥을 할게-아들과 손수우영의 대화는 필자에게 감동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 졌다. 그녀는 올해 38세다, 그녀의 성공을 빈다.

 

또 한분이 있다.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S 월간잡지에서 밤샘 읽었다. 밤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최재형장로님은 서울 마포구 신촌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현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재임중에 있다. 최장로님은 평생을 작은자 보잘것 없는 자를 진심으로 보살핀다는 것을 삶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하나의 예를 적어 보겠다. 최장로님이 경기고등학교에 재학중에 지체장애자 강명훈군이 입학했다.

 

도저히 걸을 수없어 2년동안 등에 업고 등학교를 시켰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강명훈군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수업을 위해 교실에 가는 것도 불편해 최재형군은 학교를 빨리 등교 강명훈군을 업고 교실로 이동 같이 수업을 했다. 최재형과 강명훈군은 81년 사법시험 2차에 합격하기 까지는 이에 강명훈군은 우정,이라고 표현 너무 벅찬 인간애의 고뇌,들이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리고 최재형장로님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그의 종교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최재형군은 강명훈군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를 기도했다는 것이다. 강명훈군은 중학교때는 그의 어머니가 업고 등.학교를 시켰다. 강명훈군은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최재형 장로는 사남매가 있다 딸 둘과 아들 둘이다. 아들 둘은 가슴으로 입양을 했다. 입양의 이유는 최재형장로님의 부인 이소영권사(이화여대출신)가 동대문 영아원에서 봉사활동중에 정()이들어 입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남은 해군에 입대 복무를 마쳤고 둘째는 육군에 입대 복무중이 있다.

 

그리고 최재형 장로님의 신앙생활은 진실과 신뢰를 교회내에서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가난한 집사님이 소천을 했을 때 조화도 보내주고, 밤샘 가족과 교인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참으로 현, 정부의 관료직을 가지고 있는 분인가? 교회 성도님들에게는 많은 감동을 주었다는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증언이다.

 

특히 최재형장로님( 감사원장)은 조용히 드러나지 않고 선의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윤리의 실천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한결같이 해내며 곧은 길을 걸어가시는 분, 인격과 삶이 일치되는 분으로 인터넷에 글이 새겨저 법치주의 힘을 보여 줬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필자는 두 분의 삶에 대한 흔적에 많은 감동을 갖게 했다. 이국 타향의 땅, 한반도의 구석진 목포에서 아들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과 고뇌를 이겨 가면서 삶을 개척하고 있는 중국인< 손수시영>의 삶과 현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최재형 신촌교회 장로님의 삶에 대한 감동은 국민과 그리고 종교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갖게 하면서 우리사회는 갈라치기하는 사회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도 우리들 주변에 가장 모범적인 대한민국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두 분 모두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자신의 삶을 아무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고 있어 미래의 한국은 밝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