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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훈 (시인, 법학박사, 초당대학교 교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작성일 : 2016-01-03 23:27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로 이어지는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작금의 어지러운 정국을 견디며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게 언제 읽어도 가슴 뭉클한 전율을 안겨준다.

푸시킨은 그의 나이 18세에 쓴 시 <자유>를 시작으로 당시 러시아의 농노제도와 전제정치를 비난하는 정치시와 풍자시 등을 발표하면서 청년시절부터 유배생활에 들어간다. 1831년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한 뒤, 표트르 대제의 치세를 기록하기 위한 황제 시종보라는 관직을 얻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7세 때 아내 나탈리아를 둘러싼 염문설을 기화로 근위대에 근무하는 망명 프랑스인 장교 단테스와 결투를 하게 되고 여기서 백면서생은 총상을 입어 이틀 후인 1837년 1월 29일 사망한다.

푸시킨이 사망하자 수만 명의 조문 인파가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이에 놀란 니콜라이 1세는 삼엄한 군대 경비 속에 그의 관을 비밀리에 다른 수도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시인 레르몬토프는 푸시킨의 비극적인 죽음은 러시아 궁정 모리배들의 함정과 음모 때문이라고 분노했다.

차르스코예 셀로에 소재하는 귀족학교인 학습원에서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으며 자유주의 정신에 투철했던 푸시킨은 비록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요, ‘위대한 국민 시인’으로서 오늘날 추앙받고 있다. 레르몬토프의 성토가 사실이라면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천제적인 문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한편 교수신문은 구랍 20일 전국 대학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2015년 한 해를 뒤돌아보는 사자성어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524명(59.2%)이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혼용’은 고사에서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이 합쳐진 말이며, ‘무도’는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사라졌음을 비유하는 ‘천하무도’에서 유래한다. 2015년을 이끈 이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무능하며,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로 어지러운가를 노골적으로 꼬집는 표현이라 하겠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고려대 이승환 철학과 교수는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중국 진나라 2세 황제 호해(胡亥)를 들곤 한다.”면서 “호해는 환간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하고 진은 멸망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2015년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상황을 진단하면서 “연초 메르스(MERS) 사태로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사퇴압력을 가하면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교수신문은 이밖에도 세월호 사태로 온 국민이 침통했던 2014년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름)를,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으로 나라 안이 시끄러웠던 2013년에는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함)를 각각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바 있다.

대학교수사회의 현 정부에 대한 인식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이처럼 가혹한 평가가 계속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그 임기가 헌법상 보장되는 정부의 수반이며 국정의 최고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국에서도 그 예가 흔치 않은 여성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매년 그 사회의 최고 지식인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어둡고 국민은 매우 불행하다.

생각건대,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도리가 사라졌다면 그것이 어디 국가의 지도자 한 사람 때문이겠는가. 한때는 잘나가던 중견기업가이자 정치인이 사정대상으로 몰려 자살을 택한 것이, 모범생이던 서울대 재학생이 돌연 ‘수저색깔론’을 언급하며 자신의 옥탑방 건물에서 투신해 자살한 것이 이 나라 대통령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작금의 현실은 누가 봐도 우울하고 암담하기만 한 것이 아닌가.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고 야당은 급기야 산산조각이 나기 일보직전이다. 이제 국민은 대체 누구를 믿어 이 땅의 복리와 정의를 기대할 것인가.

푸시킨의 말대로 비록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슬픔의 날과 절망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인지, 이 우울한 날들과 설움의 나날을 견디고 믿으면 정녕 기쁨의 날들이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인지를 묻고 싶어지는 2016년 새해 아침이다. 이제 다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기도 한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