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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제일정보중고 제29회 졸업증서 수여식

83세 중학교 졸업하는 김송자 씨, 평생교육원 초등과정부터 시작

작성일 : 2017-02-11 00:40

 

11일,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졸업식에는 506명 (中 221명, 高 285명)의 만학도가 졸업한다. 중학교 최고령 졸업자는 김송자(83세 여) 황환철(80세 남)씨이고, 고등학교 최고령졸업자는 이애자(76세 여) 안롱화(76세 여) 김용문(70세 남)씨이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워 공부할 수 없었던 이들이 뒤늦게나마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가슴 속 깊이 간직해왔던 오래된 소원을 이뤘다. 이번 목포제일정보고등학교 2017학년도 대학합격생은 129명이다. 4년제 대학(호남대학, 광주대학, 초당대학, 세한대학, 동신대학) 9명, 2년제 대학(목포과학대, 동아보건대, 조선이공대)120명이 합격의 영광을 안고 졸업한다.

 

버스를 탈 때마다 한글을 읽을 수 없기에 운전기사에게 물어물어

83세 중학교 졸업하는 김송자 씨, 평생교육원 초등과정부터 시작

 

시어머니 없는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여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둘, 시동생 셋 그리고 자식 육남매 모두 15명의 생활을 위해 몸이 부서지게 일했다. 베도 짜고 밭일도 집일도 쉴 틈 없이 했다. 시동생 시누이 5형제 출가시키고, 자식 6남매까지 출가시킨 후 돌아보니 70살이 가까웠다.

평생 ㄱ, ㄴ, ㄷ도 모르고 1,2,3,4도 모르고 살아왔지만 대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함께 헤쳐 왔던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불편함 쯤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었다.

딸의 소개로 상동복지관에서 ㄱ, ㄴ, ㄷ부터 배워나갔다. 처음 이름 석 자 ‘김송자’를 쓰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잠이 안 왔다. 배우는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새날이었다. 상동복지관을 3년 다니고, 집 앞에 있는 하당 복지관으로 옮겨 다시 한글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딸은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한글을 가르친다며 문해반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평생교육원에는 비슷한 처지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300명 정도 모여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한 교실에 모여 공부하니 더 재미있었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남편과 자식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100점이 맞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다. 달력이란 달력은 전부 글자 연습에 썼다.

웬만큼 글을 쓸 수 있게 되자 문해반 선생님은 일기를 써 오라 하셨다. 하루 있었던 일을 쓰면 된다고 하셨지만 처음 쓸 때는 좀 떨렸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는 문해반을 졸업하던 해까지 꾸준히 썼다.

문해반에서 공부하던 중 은행체험학습으로, 태어나서 처음 은행에 20만원을 찾으러 갔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내손으로 돈을 찾아보지 못했는데 남들처럼 펜을 들고 내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 썼다. 20만원이라고도 썼다. 은행 직원이“할머니 잘 쓰셨어요.”칭찬했을 때, 얼마나 재미지던지.

여든 하나, 드디어 초등과정을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자식들이 모두 와서 축하해줬다. 나보다 여덟 살 많은 90살의 남편은 덩달아 좋아했다. 국어, 영어, 수학, 한문 등 여러 과목이 있지만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한문시간이었다. 한자 쓰기 숙제를 매일 하다보니 숙제노트가 벌써 250매 짜리 네 권이다.

쓰는 것이 너무 즐거워 밤에도 숙제를 하고 앉아 있으면 남편이“피곤한데 그만 자소.”하고 말린다. 그러나 숙제를 아직 못했다고 앉아있으면, 대신 해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숙제검사를 맡을 때 선생님은 금방 알아본다.

“오늘 숙제는 영감님이 해주셨나 봐요.”

하면서 빨간 색연필로 싸인을 해준다. 기분 최고다.

등교할 시간이 되면 남편이

“어서 가소, 그냥 놔두고 가소.”공부하러 가는 아내를 위해 많은 것을 참아준다. 한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아내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선생님이 숙제 잘 해왔다고 크게 웃음표를 그려주는 것이 너무 좋다. 어려운 한자는 남편이 먼저 써서 가르쳐준다. 집에서의 선생님은 남편이다.

글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밝아졌다. 가게 간판이 다 보인다. 지나다니는 버스 번호도 보인다.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을지도 다 볼 수 있다. 세상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 83세, 중학교 졸업이다. 한세상 소원 다 풀었다.

 

삶에 지쳐 힘겨울 때, 배움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중학교 2년, 고등학교 2년 학창시절에 마침표를

 

신안군 압해도에서 4남 2녀 중 막내인 장 씨는 큰 형님과 24세 나이차로 태어났다. 태어나던 해 함께 태어난 큰 조카는 초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큰 형님은 자신이 공부를 못했기에 더욱 교육열을 빛냈다. 배를 타며 힘들게 돈을 벌어서 아우들과 자식들을 함께 공부시켰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의 기관사이던 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생활은 급속히 어려워졌고 중학교 진학의 꿈도 멀어져만 갔다.

공부를 잘했던 동갑내기 조카는 형님이 돌아가셨어도 장학금을 받으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갔다. 그러나 어리숙하고 숫기가 없던 장 씨는 늙으신 부모님께 중학교에 진학하겠다고 고집할 수 없었다. 그 시절 교복을 입고 학교 가던 조카와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학교를 알게 된 것은 57세, 한참 삶에 지쳐있을 때였다. 일찍 가정을 이룬 외아들이 직장이 없어 일거리를 마련해 주려고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 신발가게와 치킨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아르바이트생은 오토바이 사고까지 났다. 차례로 문을 닫고는 감당하기 힘겨운 빚에 눌려 있을 때였다. 어른들이 다니는 중학교가 있다는 지인의 말에 귀가 솔깃했으나 지금 형편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거부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숨겨져 있던 공부에 대한 욕망의 불씨가 되살아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 교복입고 학교 가던 친구들의 모습, 무엇보다도 당당해 보이는 그네들에 대한 부러움이 염치없이 쳐들어왔다. 아내는 우리 형편에 어렵지 않겠냐고 하면서도 얼마나 공부하고 싶어하는 지를 알고 있었기에 공부하고 싶으면 입학하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장 씨, 누군가의 말처럼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었다. 직업 없는 아들내외와 두 손주들, 그리고 장 씨 부부가 함께 사는 가난한 생활이지만 가슴엔 꺼지지 않는 꿈이 있었다. 가진 것 많은 사람도 두려움 때문에 공부하는 것에 새롭게 도전하지 못할 때, 꿈 부자인 장 씨는 늦깎이 학생이 되어 중학교에 입학했고 어느새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평생교육시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영어 알파벳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44년 만에 입학한 중학교에서 처음 펜을 잡던 그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다. 살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영어, 한문, 컴퓨터였다. A, B, C, D를 하나씩 그리고 한자도 익혀나갔다. 그림을 그리듯 천천히 그리기 시작했는데 뒤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그러나 고3학년이 된 지금은 어렵지 않게 쓰고 읽을 수 있다. TV 퀴즈프로그램이나 대담프로그램에서 하는 얘기들이 하나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거리 간판도 어느 사이 읽으며 지나갔다. 세탁기가 고장났을 때 서비스신청을 하는데 제품 번호를 불러달라는 전화기 건너편 말에 아내가 당황해할 때 내가 큰 소리로 읽어준 일도 너무 자랑스러웠다.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지만 악보를 어떻게 보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음악시간을 통해 악보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 시간에는 한글 문서 작성을 배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엑셀을 통해 돈 계산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저기 모임에서 총무를 세 개나 맡고 있어 회비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할 때 계산기를 들고 맞추다보면 틀리기 일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엑셀 작업을 하니 그냥 한꺼번에 계산이 되었다. 또한 초등학교 동창밴드에서 글을 읽기는 했지만 글자가 틀릴까봐 글을 올릴 용기는 없었는데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신감이 생겨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남들이 그냥 하는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식들 책만 이리저리 넘겨보던 그에게 책이 생기고 동문과 선생님이 생겼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재산이고 기쁨인지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이 없어 앞에 나서지 못했는데 이제는 어느 모임이든 말 할 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의견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현실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선택받은 이들만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던 반창회가 생겼고 체육대회, 수학여행의 추억도 반짝인다. 만학의 중,고 4년은 장 씨 인생후반기를 풍성하게 수놓으며 새로운 힘이 되어 주었다.

 

올해로 개교 56년을 맞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2017년 현재 일 만 오천여명의 동문을 배출한 평생교육 학력인정 중고등학교로써, 2017년 중고등학교 신입생을 선착순 모집하고 있다.(문의 276-4947)

 

/정리=김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