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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무사

참새와 허수아비(1)

작성일 : 2017-10-17 18:26

 

 

 

세상에는 상대방에 의하여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는 대립적 관계의 개체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참새와 허수아비는 숙명적인 만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새는 어떻게 해서든지 농부가 애써 지키려 하는 곡식을 먹어야 그 생명을 지켜 나갈 수가 있을 것이고 허수아비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크게 흔들어 놀란 참새를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둘의 관계는 서로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아름다운 대립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참새와 허수아비를 보고 한 줄의 글귀를 부담 없이 토로하기도 합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을 당시에는 사람과 자동차가 자유롭게 오가야 할 대로상에서 전투경찰과 대학생들이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채 서로 간에 피를 부르는 극한투쟁을 벌이곤 하였습니다.

 

누가 이러한 아비규환의 지경까지 가도록 하였는지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대다수 건강한 시민들과 국민들의 가슴에는 매일 매일 안타까움만이 쌓여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은 소리 높여 적대세력의 방패 노릇을 하고 있는 전투경찰의 타도를 외치고 전투경찰은 대학생들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왔기 때문에 대학생 타도를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 문제의 대학생이 군에 입대하여 전투경찰이 되고 보니 대학시절 적대시 하였던 전투경찰이 자신인 것에 놀라고 직접 겪어보니 데모를 주도하는 학생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모두 자신에게 맞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사회에는 이토록 이념과 이익이 충돌하는 현장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성을 요구하는 소리도 있지만 때로는 자칫하여 원래의 함성을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갈등과 반목이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정과 나아가 나라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해질녘 어스름 골목에서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물체를 한사람은 “해”라고 우기고 한사람은 “달”이라고 합니다.

 

결론을 내지 못한 두 사람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묻습니다. 나그네는 입장 난처한 현장을 벗어나기 위하여 궁색한 해답을 내놓습니다. “나는 이 동네에 살지 않아 잘 모른다”

그래도 두 사람의 다툼은 끊이지 않고 어느 듯 동녘에 여명이 밝아오면 잠자던 수탉이 깨어 날개를 털어 싸우는 두 사람에게 또 다른 물음표를 던집니다.

 

이번에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로 불길이 번집니다.

급기야 참다못한 어느 일방이 다른 상대방의 뺨을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칩니다. 그러고서도 이제 방금 “철석” 소리는 손바닥에서 났느냐, 뺨에서 났느냐.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언제 기차가 달려올지 모르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지 않는 철로 위를 걸으면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철마는 큰 입을 벌려 그들이 펼쳐 놓은 공허한 메아리를 송두리 채 집어삼키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 속에서도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이 있습니다.

제가 한 시간씩 기다려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도달할 수 있는 시골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중간 기착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때 마침 노선버스가 결행을 한 것입니다.

 

한사람 두 사람 기다리다가 약 20여명의 사람이 같은 방향의 버스를 기다리면서 약속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줄을 서게 되었는데 저는 열 번째 쯤 줄을 서게 되었습니다.

 

아마 만원 버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창문을 통하여 바라본 버스는 거의 사람으로 가득 찬 콩나물 시루였습니다. 한사람씩 버스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데 문득 나만이라도 탔으면 좋겠다는 비겁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더 이상의 공간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사이 이번에는 망령이 들었는지 그만 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디선가 그만 태우라는 소리가 빗발치고 그사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았는지 비명을 지릅니다. 그 와중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은 사람이 오히려 밟힌 사람에게 고함을 지릅니다.

 

“이렇게도 복잡한데 하필이면 내 발밑에다 발을 놓으면 나는 어디에 발을 딛느냐”

얼핏 보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극한 상황에서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합니다. 자신과의 갈등인 셈이지요.

그래도 버스는 시골길을 이리저리 돌아 잘도 갑니다.

 

차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스런 순간에서 빨리 해방이 되기를 빌지만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