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뉴스 > 오피니언

세월호 유골 은폐…처참하고도 슬픈 일

작성일 : 2017-11-24 11:41

 

 

경천동지라는 단어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 하늘이 놀랄 일이고 경기(驚氣)가 날 일이다.

그것도 세월호 정권, 민중의 함성 촛불 정권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정권에서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나기 전날 발견된 유골과 관련한 보고를 청와대에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세월호 유골과 관련해 청와대는 언제 알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언론보도가 나온 22일에 알았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17일 세월호에서 사람 뼈 1점이 발견됐지만 해수부 현장수습부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18일 목포신항을 떠날 때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 되며 은폐 논란이 일었다.

 

김영춘 장관은 20일 해당 내용에 대한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즉 보고를 받은 직후인 20일부터 언론보도가 나온 22일까지 사흘 동안 김 장관이 청와대에 해당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이 된다.

 

시쳇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고 믿고 기다리겠다는 유족들을 한 번 더 울리는 일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묵과해서도 안 될 일이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엄정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 4ㆍ16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5일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수백 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생존했고, 300여 명이 넘는 사망ㆍ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급격한 변침(變針, 선박 진행 방향을 변경) 등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인해 좌현부터 침몰이 시작됐으나 ▷엉뚱한 교신으로 인한 골든타임 지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뒷북 대처 등 총체적 부실로 최악의 인재(人災)로 이어졌다.

이후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사고 원인 수사,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의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一家)에 대한 경영 비리 수사 등이 진행됐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014년 5월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해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이라고 발표했다. 유 회장 등에 대한 수사는 유 회장의 도피로 난항을 거듭했고, 결국 7월 말 유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 전 회장에 대한 수사는 그해 8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그리고 세월호에 대한 수색 작업은 2014년 11월 11일 종료되면서 사망자는 295명, 미수습자는 9명으로 남았다. 유족들은 수색 중단 직후부터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으나 공식 인양 결정은 세월호 침몰 1년 만인 2015년 4월 22일이 되어서야 확정됐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4월 22일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발표하고, 같은 해 7월 인양업체로 중국의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당초 정부는 2016년 7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인양 작업은 기술, 비용 문제 등으로 계속 지연되다 2017년 3월 22일에야 이뤄졌고 4월 11일 육상 거치 작업이 완료됐다. 세월호의 육상 거치가 완료됨에 따라 앞으로는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습·수색 체제로 전환되며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도 함께 진행된다.

 

한편,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300여 명을 내버려 두고 배에서 탈출해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은 2014년 5월 재판에 넘겨졌으며 3심에 걸쳐 이 선장은 무기징역, 나머지 선원 14명은 징역 1년 6개월~12년을 받았다.

 

■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원인

 

① 무리한 화물 적재와 증축

세월호 출항 예정시각이었던 4월 15일 저녁 6시 30분 인천항엔 안개가 자욱해 많은 선박들이 출항을 포기했으나, 세월호만 2시간 30분 늦게 출항했다. 또 세월호는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ㆍ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 실린 화물은 차량 180대ㆍ화물 1,157톤으로 무리한 화물을 적재했다. 이와 같은 과적 화물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복원력을 잃은 핵심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기도 했다.

 

② 진도 VTS 관제 허술, 골든타임 허비

세월호는 급선회로 배에 이상이 생긴 이후,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에 최초 신고를 해 초기 대응시간(골든타임)을 허비했다. 더욱이 세월호가 진도 VTS 관할 수역에 4월 16일 오전 7시 7분에 이미 진입해 있었음에도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고를 받고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구조로 일관했다.

 

③ 승객 버리고 탈출, 선원들 최악의 무책임함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서는 인명구조 등 비상상황이 발생 시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하고, 승무원은 각자 역할을 맡아 탑승객 구조를 도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나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됐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르다는 위험천만한 맹골수도(孟骨水道)였지만, 이 지역의 운항을 지휘한 사람은 입사 4개월째인 3등 항해사로 드러났으며, 더욱이 이곳을 통과할 때 선장은 조타실을 비운 것으로 드러났다.

 

④ 허둥댄 정부, 초동 대처 실패

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넘겼다. 하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경기도교육청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잘못된 공지로 공분을 일으켰다.

 

여기에 해수부ㆍ교육부ㆍ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다. 총리실은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정홍원 전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구조 작업은 더뎌졌다.

 

⑤ 뒤늦은 구조 작업 돌입

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완전히 침몰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는데,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4월 1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인 4월 16일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 수백 명의 구조요원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수중수색은 3차에 걸쳐 16명이 투입되는 데 그쳤다.

 

또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하고 있어 이 시기 구조장비의 빠른 투입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백 투입은 4월 18일에야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뒤늦게 투입됐다.

 

■ 세월호 사고 이후 부상한 문제들

 

① 해피아 문제의 심각성

세월호 참사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의 해양 관련 산하ㆍ유관기관 핵심보직 독식과 이로 인한 봐주기식 일처리가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해수부 일을 위임받은 산하기관은 선박 안전점검을 수행하는 일을 위임받은 한국선급부터 선박 도면 승인과 같은 안전검사 업무를 맡은 선박안전기술공단, 해운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승선자 명단 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해운조합 등 무려 14곳(2014년 현재)에 이른다. 현재 해수부 산하 및 유관기관 14곳 중 11개 기관장(한국선급, 해운조합 포함)이 해수부 출신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해수부 출신 퇴직관료들이 해양안전이나 운항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유착고리가 형성됐고, 이에 따라 선박관리 부실을 더욱 확산시켰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② 정부 책임론 부상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직후 초동 대처부터 허둥댔던 정부의 무능과 혼선 등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이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노출되면서 정부 책임론에 대한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 부실대응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를 밝혔지만,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앞서 국민 안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행정안전부의 부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한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안행부의 재난관리 기능을 대폭 확대했으나 이번 참사에서 안행부가 중심이 된 재난체계는 전혀 구실을 하지 못 했다. 특히 세월호 사고 발생 후 한 시간 가까이 지나 꾸려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거세게 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4ㆍ16 세월호 참사 인용